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톰과 제리 (문단 편집) == 제작 역사 & 비교 == [[파일:external/media-2.web.britannica.com/142458-004-2B6514B7.jpg]] 1920년대 이른바 미국 애니메이션의 '황금기(Golden Age)'가 불리던 시대가 도래하면서 당시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경쟁적으로 애니메이션 시장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독립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에게 애니메이션 제작을 맡기던 영화사들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예 자체적으로 애니메이션 부서를 설립해 자사 소유의 극장에서 상영할 단편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하게 되었다. 당시 미국 최대의 영화 배급사였던 [[MGM]] 역시 마찬가지로 1937년 자사 애니메이션 제작 부서인 MGM 카툰 스튜디오(MGM Cartoon Studios)를 설립하였는데[* [[루니 툰]], [[메리 멜로디즈]] 등을 제작한 휴 하먼(Hugh Harman)-루돌프 아이징(Rudolf Ising) 콤비가 [[워너 브라더스]]와 결별한 후 MGM과 계약을 체결했는데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하먼-아이징 콤비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예산을 과도하게 요구하자 열받은 MGM 측에서 계약을 파기하고 자체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차렸다.], MGM의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당시 미국 애니메이션계에서 재능있는 애니메이터들을 대거 스카우트해 호기롭게 출발한 MGM 카툰 스튜디오였으나 그들의 첫 작품인 '선장과 아이들(The Captain and the Kids)'은 흥행이 부진하여 [[조기종영]]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같은 시기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폴 테리]]가 설립한 테리툰즈(Terrytoons)에서 MGM 카툰 스튜디오로 이적한 애니메이터 [[조셉 바베라|조셉 롤런드 바베라]](Joseph Roland Barbera)는 '선장과 아이들'의 폭망 이후 MGM으로 재스카우트된 하먼-아이징 콤비 밑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윌리엄 해나]](William Hanna)[* MGM 카툰 스튜디오 합류 이전부터 하먼-아이징 콤비 밑에서 일했으며 MGM에서는 위의 '선장과 아이들'의 감독을 망했으나 대차게 망하고 스토리 작가로 좌천된 상황이었다.]를 만나 팀을 이루었다. 신작 애니메이션에 대한 아이디어를 고민하던 해나-바베라 콤비는 '언제나 서로 다투기만 하는 두 명의 캐릭터'라는 컨셉을 떠올렸고, 처음에는 여우와 개를 주인공으로 할까 했으나 [[이솝 우화]]의 '고양이와 쥐'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고양이와 쥐'를 그 주인공으로 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곧바로 이 둘은 당시 MGM 카툰 스튜디오의 총책임자였던 프로듀서 프레드 큄비(Fred Quimby)[* 원래 기자 출신으로 프로듀서로 전직해 [[파테]]의 이사직을 맡은 경력이 있으며 1927년 MGM의 단편영화 부서 총책임자로 스카우트되어 1937년 애니메이션 제작 부서로 이동, MGM 카툰 스튜디오의 설립을 맡았다. ][* 프로듀서로서 큄비는 '톰과 제리' 뿐만 아니라 MGM에서 제작한 다른 애니메이션들의 프로듀싱도 맡았으나 의외로 만화에 대해 잘 모르는 딱딱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는 거의 관여를 하지 않고 크레딧에 이름만 올린 수준이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성공의 공적은 프로듀서인 큄비 혼자 받다시피 했고 시상식에도 다른 애니메이터들은 부르지도 않고 큄비 혼자 참석해 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예산 좀 넉넉하게 달라는 자사 애니메이터들의 요구사항은 잘 들어주지도 않아 해나-바베라 콤비를 포함한 다른 애니메이터들은 큄비를 꽤 싫어했다고. 말년의 해나-바베라 콤비도 큄비에 대해 회고하면서 애니메이션 프로듀서로서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고 깠다.]를 찾아가 자신들이 내놓은 아이디어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큄비는 그들의 아이디어에는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는 않았으나 반대는 하지 않았고, 해나-바베라 콤비는 1940년 첫 작품인 'Puss Gets the Boot'를 제작, 비평과 흥행 양쪽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Puss Gets the Boot'는 바로 1941년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정작 이 에피소드를 맘에 들어하지 않던 MGM의 경영진은 해나-바베라 콤비에게 다음 에피소드의 제작 중단을 요구하면서 '톰과 제리'는 80년이 넘는 장수 시리즈가 아닌 단순 [[파일럿(방송)|일회성]] 단편으로 남을 뻔 했다. 그러나 텍사스 출신의 사업가인 베사 쇼트(Bessa Short)로부터 "저번에 극장에서 개봉했던 '고양이와 쥐' 애니메이션, 혹시 더 만들어 줄 수 없냐"는 편지를 받은 MGM의 경영진이 마음을 돌려 다음 에피소드의 제작을 허용하면서 '고양이와 쥐' 시리즈는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고양이와 쥐'가 정식 시리즈가 되면서 주인공인 고양이와 쥐에도 정식으로 이름이 붙게 되었는데, MGM 카툰 스튜디오에서 고양이와 쥐의 이름을 두고 사내 공모전을 열었고 애니메이터 존 카(John Carr)가 [[크리스마스]]철에 마시는 [[칵테일]] '''톰 앤드 제리(Tom and Jerry)'''에서 유래한 '''[[토머스 캣|'토머스 캣(Thomas Cat)']]'''과 '''[[제리 마우스|'제리 마우스(Jerry Mouse)']]'''[* 톰과 제리의 이름이 정식으로 정해지기 전 Puss Gets the Boot에서 나오는 톰의 이름은 '재스퍼(Jasper)'였고 제리의 원래 이름은 본편에서는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나중에 해나가 자신의 저서에서 '징크스(Jinx)'라고 붙였다고 밝혔다.]라는 이름을 제안, 정식 이름으로 선정되면서 시리즈의 이름은 '톰과 제리'가 되었다. 이후 1957년까지 에피소드의 제작이 이루어지다가 1957년 MGM이 MGM 카툰 스튜디오를 폐쇄한 것의 여파로 원작자인 해나-바베라 콤비를 포함해 MGM 카툰 스튜디오의 직원들이 퇴사하면서 종영되었다. 몇 년 후 1961년 MGM이 톰과 제리 시리즈를 부활시키면서 [[진 데이치]]가 감독을 맡아 [[체코슬로바키아]]에 위치한 렘브란트 필름(Rembrandt Films)에서 외주 제작을 하였다. 하지만 이 작픔은 좋지 않은 평가를 받으면서 조기 종영, 1963년 [[루니 툰]]으로 유명한 [[척 존스]]가 감독을 맡아 척 존스가 설립한 시브 타워 12 프로덕션(Sib Tower 12 Productions)에서 제작을 하였다. 진 데이치 단편보다는 확실히 낫지만 감독이 루니 툰을 제작한 척 존스라 그런지 루니 툰식 연출 스타일이 톰과 제리에 그대로 반영되다 보니 호불호가 갈린다는게 흠. 이후 톰과 제리 시리즈는 1986년 MGM으로부터 1986년 5월 이전의 MGM 작품의 판권을 인수한 터너 엔터테인먼트[* 정확히는 터너가 MGM을 인수한 직후 막대한 채무 때문에 MGM 작품의 판권만 갖고 MGM을 다시 매각했다. 참고로 톰과 제리의 원작자인 해나-바베라 콤비가 MGM 퇴사 이후 세운 [[해나-바베라 프로덕션]]도 1991년 터너에 인수되었다.]를 거쳐 1996년 터너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워너 브라더스로 판권이 넘어갔고, 윌리엄 해나가 2001년, 조셉 바베라는 2006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톰과 제리 시리즈는 워너 브라더스에서 계속 제작 중이다. 하지만 새 시리즈들은 오히려 1940~50년대에 나온 해나-바베라 단편보다 더 떨어진다는 게 세간의 평. 셀 애니메이션이 아닌 디지털 작화를 썼으며 움직임도 딱딱해지고 슬랩스틱의 수준도 많이 떨어졌다. 해나-바베라 단편은 흔히 농담 삼는 '[[천조국]][[대륙의 기상|의 기상]]'이란 말이 딱 맞는다. [[프레임]] 단위로 철저하게 계산된 움직임, 특히 [[배경 음악]]에 귀신같이 싱크로를 맞추는 장면들은 가히 소름이 끼칠 정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